001-아버지가 죽었다.

Prolog

아버지가 죽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고 말해야 옳지만. 부자의 정으로 살아 오지 못한지 이미 오래되었다. 그 동안 서로가 무엇을 하며 돈을 버는지도 무엇을 하며 지내는지도 묻지 않았다. 서로 만나면 끓어 오르는 감정을 안간힘으로 참으며 마치 조금만 손대면 터질 듯 한 풍선을 다루듯 조심스럽고 무덤덤하게 서로에게 대하고는 했다. 무심한 듯 던지는 무뚝뚝한 말한마디도 사실은 온갖 생각과 계산을 한뒤 최대한 평범한 듯 보이도록 던지는 말이였다. 남들이 본다면 남자들끼리라 무미건조한 대화를 한다고 생각했겠지만 우리는 이 아슬아슬한 상태를 유지 하려고 대화 한 마디 한마디에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

너무나도 당연하게 그런 대화는 오래 가지 못했고 서로의 만남과 대화를 피하게 되었다. 우리는 그렇게 부자 지간이 아닌 남자와 남자 사이가 되어 살아가게 되었다. 내 인생의 가장 길고 어두운 암흑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