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한 남자가 죽었고. 난 배고프다.
“그 인간이 죽어서 속이 다 시원하네. 잘 죽었다. 버러지 같은 놈.”
지나는 사람들 마다 너 나 할것 없이 사람의 죽음을 기뻐하고 있었다. 사람이 죽는 다는 게 누군가가 이렇게 까지 기뻐할 일일까? 나는 사람들이 축배를 들며 즐거워하는 이유가 누군가의 죽음때문이라는 사실에 묘한 모순을 느끼며 출근길 인터넷 뉴스를 탐독하고 있었다. 지각으로 인해 항상 먹던 아침을 거른 탓에 배에서는 ‘30분 뒤면 넌 배고파 질거야’라는 약하고 지속적인 허기 신호를 보내고 있다.
‘5선에 빛나는 국회의원의 안타까운 총격 사망’
언론과 정치인들은 그의 죽음을 애도하고 분노의 말들을 토해낸다. 그들은 당장에 범인을 색출 해야 한다고 울분을 토해 내며 경찰을 압박하지만, 일반 시민들은 누가 죽였는지 관심도 없다. 단지 그 지긋지긋한 정치인이 죽어 기뻐 할 뿐이다. 나는 이미 그 정치인이 방송에 나와 언제나 하던 말을 들어보고 신뢰가 가지 않아 그 어떤 말에도 관심을 가지지 않아 그의 죽음이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의 죽음이 기쁜가 보다. 일면식은 없지만 존재를 아는 사람의 죽음에 이렇게 까지 무관심 하다는 것이 인간적으로 괜찮은 건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지만, 결국 관심 없는건 없는거다. 금방 지나갈 일이고 몇 년 후엔 그 누구도 기억 못할 일이다. 인간의 생명은 소중 하지만 어느 정도 타인의 생명까지 소중한 지는 생각해 본일이 없다. 아마도 나는 꽤 가까운 사이인 사람의 죽음까지도 의외로 담담하게 지나갈 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언제 만났는지도 모르는 흘러간 사람의 죽음 보다는 당장 내 앞에서 손톱깍다 손끝을 조금 더 잘라내 다친 동료를 보는 것이 더 가슴이 시리다. 그리고 그 손가락 상처 보다 미약하고 꾸준한 허기 신호가 더 신경 쓰인다.
하지만 꾸준히 자신을 돌아보며 내가 감정이 메마른 사람이란 것을 감춰온 결과 오히려 남들에게는 다정다감한 사람으로 비처지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곤 한다. 나는 스스로가 사이코패스가 아닌지 끊임없이 의심하고 관리하고 있다. 관리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그 누구와도 인간관계를 맺지 못하는 정신적, 대인적 불구가 될 것 같아 두렵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나를 떠나며 남겼던 전 여자친구의 말이 국회의원의 죽음을 무덤덤히 지나가는 오늘 유난히 생각이 난다.
“넌 단단하고 따뜻한 영혼을 가지고 있지만. 얇은 영혼을 지나면 안에는 텅 빈, 속빈 달걀 껍질같아. “